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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 사람과 얘기하는 음악 하고 싶어”

세계에 꽹과리 울리는 국악 뮤지션 김주홍

노름마치 김주홍

 

“열아홉 살에 첫사랑을 만나서 마흔세 살인 지금까지 잘 살고 있으니 너무 행복하다.”

‘음악인 김주홍(김주홍과 노름마치 대표)’의 말이다. 그의 첫사랑은 ‘국악’이다. 그가 단장을 맡고 있는 김주홍과 노름마치가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고, 그동안 40개국 100개 도시에서 연주회를 열었다. 국악 연주 단체로 쉽지 않은 기록이다. 이를 위해 김주홍이 지불한 대가는 혹독했다.

전남 진도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공부 좀 한다고 광주로 유학 온 김주홍은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89년 봄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광주문예회관에서 신모듬을 연주하는 것을 봤다. 소년 김주홍은 그 자리에서 “이게 내 길이고 첫사랑”임을 직감했다.

진도에 계신 아버지에게 “국악을 하겠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장구 그거 좋지, 근디 그게 속은 비었다”며 반대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진도는 척박해서 보릿고개를 심하게 겪었다. 진도에서 당골(세습무)에 대한 손가락질도 심했고….” 하지만 첫사랑은 그런 현실적인 걱정보다 훨씬 강력했다. 다음 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는 서울로 향했다.

씻김굿 공부하려 진도에서 방위 복무

일면식도 없는 김덕수패 사물놀이 팀 사무실인 ‘난장’으로 찾아간 김주홍은 “먹여주고 재워주고 가르쳐주면 식모살이를 하겠다”고 읍소했다. 거기서 공부가 시작됐다. 그때 난장은 전통문화의 새로운 기운이 싹트는 곳이었다. 그곳은 안숙선, 임동창, 박병천이 모여 국악의 새로운 접점을 모색하는 장소였다.

임동창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먹고 자는 그에게 “주홍아, 진짜 힘들면 그만둬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김주홍은 “나는 거기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고 기억한다. 그에게 판소리를 가르친 무형문화재 안숙선은 그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서 “너는 할 수 있다. 신념을 갖고 해라”라고 격려했다. 김덕수는 먹고살기 위해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나가려는 그에게 “호랑이는 썩은 고기를 먹지 않는다. 당장 때려치워라. 네가 장구 쳐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굶어라”라고 결기를 돋아줬다. 이광수(대불대 교수·노름마치 창립자)는 “하나를 쳐라, 장구나 모든 것이 다 하나로 귀결된다. 그러면 그 다음은 자연스럽게 풀려간다”고 길을 인도했다. 김주홍은 “그래서 지금의 내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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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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